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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

Chico & Rita


회한에 가득찬 노년의 삶.
한 문장 안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두가지가 담겨 있다.
후회, 그리고 나이를 먹는 것.

이 영화는 치코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노인이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이제는 노인이 되버린 치코가 젊었을 적 작곡한 Sabor a mi.
노래는 이내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상자에 묵혀두었던 악보와 사진들을 꺼내어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맥주를 다 마시고 누워서 잠을 청해보지만 쉬이 잠은 들지 않고, 때아닌 정전으로 인해 이웃들의 고성은 커져가고, 회상은 짙어진다..

회상의 내용은 젊었을 적 피아니스트였던 치코와, 가수였던 리타에 대한 이야기.
서로 사랑하지만 오해로 인해 헤어지고 만났다를 반복하다, 예기치 못한 모함과 시대의 풍파에 휩쓸린다.
회상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후, 한 젊은 가수가 치코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면서 치코는 LA에 가게되고, 그 곳에서 47년만에 리타와 재회한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노년에 대해 상상한다.
반짝반짝 빛나던 젊음이 사라지고, 나이를 먹어가며 그들이 했을 후회들에 대해 상상한다.
젊음을 공유하며 꿈을 품고 뉴욕에 함께 건너온 친구의 안주머니에 마약을 몰래 넣은 라몬은 그 때를 후회할까,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면서, 치기어린 마음에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다 리타에게 상처를 주었던 순간들을 치코는 후회할까,
치코를 두고 뉴욕으로 홀로 떠나 온걸, 치코에게 실연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냈을 때를 리타는 후회할까,
나이들어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 별거 아닌 오해들이었는데, 그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그 순간들을 후회할까,
그들의 후회를 하나하나 상상할 때마다 괜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어쩌면 이들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젊었을 때의 치기어렸던 행동들도 다 그 때였으니 할 수 있었던 행동들이었다고.
나는 내 젊음의 열정을 사랑과 음악에 쏟아부었고, 그 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그렇게 했을거라고.

내가 그들의 후회에 대해 상상하며 울적해지는 것도, 다 나의 두려움과 오만함에서 나오는 걸거다.
나이를 먹으면서 후회할만한 행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 행동을 한다한들 본인만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날 일.
제3자인 내가,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 회한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건 오만함 때문이겠지.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싶다.
나의 오만함에 갖혀 혼자 만들어 낸 상상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 장점을 생각해내며 좋은 것이라고 합리화해야 한다.
나의 시간은 아무리 내가 막아본다한들 흘러가게 되어있고, 나는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야한다.
만에하나, 내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되새김질하며 선택 그 자체를 후회해서는 안된다.
내가 어떤 이유로 선택을 하게되었는지에 대해 떠올려보고, 그 이유가 정당했다면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선택의 이유에 대한 사고과정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나중에 일어날 사건들의 교훈으로 삼으면 되는 일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시간은 어차피 흘러간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울해말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꿔야 한다.

이상, 치코와 리타로 시작해서 인생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며 마무리하는 후기 끝.

끝내기 전에 영화에 대해 좀 더 얘기하자면 음악, 색감이,,bb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이라 아쉬웠는데, 애니메이션이기에 이런 감성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새 본 영화 중 가장 인상깊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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